11) 전 집주인의 흥망사........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강제경매 자체는 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다만 기분이 엄청 나쁠 뿐이었다. 배당요구종기일인 7월 17일 이전에 소유권이전을 위한 본등기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아내나 우리 아이들도 앞서 말한 그런 종류의 우편물이 오면 내가 시키는 대로 뜯어보지도 않고 버렸다. 그래도 전 소유자에게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또 본건 외에 또 내가 모르는 다른 건이 있는지 알고도 싶었다. 전 소유자는 ‘사실 늘 찜찜했는데 결국 그렇게 돼버렸네요’하면서 전화상으로 연신 죄송하다고 거듭거듭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뿐이라 오히려 내가 위로해 줬다. 토요일 저녁에 만나서 소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 몇몇 되지 않은 매우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자 마자 어찌할 줄을 모르고 연신 죄송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 진정성이 느껴졌다. 강제경매를 신청한 채권자는 처남이 운영하는 주점에 술을 공급하는 회사이고 그는 처남을 위해 3천만원의 보증을 서줬는데 처남도 망했고 일부를 갚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간을 좀 주면 돈을 마련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맥주에 소주를 섞어서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트럭행상부터 시작해서 모은 돈으로 부산 해운대에서 엄청 큰 규모의 카페와 술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IMF로 투자금을 모두 다 날리고 파산선고를 받다시피 하여 단돈 50만원으로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왔다. 무엇이든 물건을 파는 일은 자신이 있었지만 막막했다. 어느 날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폐업하는 옷가게를 지나가는데 문뜩 저 물건을 내가 사서 팔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들을 200만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선금 20만원을 줬다. 이틀 만에 거의 다 팔아 치웠는데 순수하게 70만원이 조금 넘게 남았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아내와 함께 처음에는 옷가게를 중심으로 폐업정리 대행업(?)에 뛰어들었다. 하루 30만원을 벌은 적도 있었고 200만원을 벌기도 했다. 옷가게에 이어 화장품가게, 문구점, 신발가게 등등 업종도 늘려나갔고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서 직원을 여럿 두고 전국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2년 만에 아파트를 하나 샀고 5년 만에 20억 정도를 벌었다. 아파트에 처음 이사해서 아파트 복도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단독주택을 사서 이사하는 꿈을 가졌고, 마침내 바로 그 집을 2005년 5월에 사게 되었다. 그 집을 사서 수리비도 꽤 들어갔고 네 아이들과 한동안 재미있게 살았다. 직원들을 불러 파티도 자주 했다. 나는 에쿠스를 타고 아내는 체어맨을 탔다.
그러다가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20대에서 70대 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생막걸리 체인사업을 시작했다. 직원이 한때 100명이 넘었다. 그러나 체인 사업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고 결국 2년 만에 모든 것을 잃었다. 지금은 다시 폐업정리 대행을 하고 있다. 이제는 매장에 딱 들어서서 한 바퀴 둘러보면 팔 수 있는 물건, 팔리지 않는 물건이 구별이 되고 계산기 하나 가지고 한 10여분만 계산하면 얼마하고 가격이 튀어나올 정도가 됐다. 아직은 나이가 있고 얼마든지 다시 재기할 자신이 있다.>
나는 그에게 ‘한 번 돈을 많이 벌어보신 분들은 다시 쉽게 그만큼 버는 것을 많이 봤다’며 위로를 해줬다. 그러면서 또 주제넘게 강제경매 채권자와 협상을 해보라고 조언을 했다. 어차피 내가 본등기를 하면 채권자는 다른 방법이 없을 테니까 지금 상환하지 말고 그 때 가서 한 50%정도 상환하는 것으로 말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배째라’하든지 조금씩 분할해서 상환하든지 하는 방법으로 협의해보라고 했다. 2년 동안 거래를 통하여 그만큼 많이 팔아줬으면 채권자도 그 정도는 들어 주지 않겠는가. 돈 천만원가지고 정말 치사하게시리 강제경매까지 신청하다니..........그것도 가등기권자에게 어떤 사실조회나 현장조사도 없이 일방적으로.......나도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
그는 내가 소주 한잔을 마실 때마다 소맥을 반 컵씩 들이키면서 죄송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번갈아가며 했다. 신경쓰게해서 미안하다는 얘기고 오늘 나에게 무슨 말을 들을까, 빨리 해결하라고 다그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조언까지 해주시니 정말 고맙다는 애기다. 두 사람은 어느새 윤형! 한형! 하며 의기투합이 되어 있었다. 곱창을 추가로 시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때마침 부실 부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부실채권 회수기법 중에 ‘심리적 압박’이라는 수단이 있다. 예를 들면 선순위 근저당권(10억원) 등의 채권이 많아서 가압류->민사재판->강제경매(예상 6억원)를 통해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만 가압류를 해놓으면 해당물건을 임의 처분할 수도 없는 등 심리적인 부담 때문에 채무를 자발적으로 상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가구 주택 등에 가압류를 해놓으면 주인은 나가고자하는 세입자 등살에 견딜 수가 없다. 가압류상태에서는 전세도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집의 경우에도 가등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압류를 했고 (주)**주류에서 강제경매 신청을 한 것이다. 가등기권자가 채무자에게 빨리 해결해 달라고 성화를 부려주길 바라는 것이다. 전 집주인의 양도소득세를 경감받기 위해 5월 20일 이후에 본등기를 하기로 약속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당장 본등기 하겠다고 하면 전주인은 강제경매 채권을 갚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금보다는 갚을 돈이 훨씬 적으니까.
내 집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채무로 인하여 강제경매 개시결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영 기분 나쁜 일이었지만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냥 기다려 보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이 다 해결해 줄 테니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강제경매 채권자에게 전화해서 내가 가등기권자임을 밝히고 무익한 강제경매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전무라고 사람은 별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나에게 ‘채무자와 짜고서 재산을 도피시켰다’느니, ‘형사처벌도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라는 둥 어쩌고 저쩌고 그야말로 무식한 협박성 발언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한 건지, 아니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주류 유통회사의 생리가 그런 건지 한마디로 엄청 재수 없는 인간이었다. 나도 약이 올라 ‘좋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하는 오기가 또 발동했다.
사람이 선의를 가졌다 해도 모든 일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전 집주인 사정 봐주기로 했기 때문에 또 한 차례 곤혹스러운 일을 당해야 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오늘 아빠는 한통의 전화를 받고 무척 기뻤다.
아들이 드디어 반에서 1등(전교 10등)을 했다는 구나.
1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이 맨 처음 중학교 입학해서는
15%대에 머무르던 성적이 점점 더 좋아져서
마침내 3%대까지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졸업할 때 까지는 아직 1년 반이 남았는데 끝까지
정진하기 바란다.
아울러 우리 둘째딸!
‘엄마 친구 딸’만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단다.
자기 나이에 꼭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나중에 하려고 하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고
할 수 있다하더라도 엄청 더 힘들단다.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면 중학교에 가서
인수분해도 못하고 2차 방정식도 못 푸는 것처럼
세상사가 다 그렇다.
아빠도 고등학교 3년 동안 너무너무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 대가를 아직까지도 치루고 있다.
아빠가 우스개 말로 즐겨 쓰는 말이지만 이런 말이 있다.
‘소(牛)발에 땀나면 말(馬)보다 빠르다’
언젠가는 한번 발동이 걸리면 가속도가 붙어
무서운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믿고 기다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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