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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부자아빠 石泉 2021. 12. 27. 22:24
능소화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2008년 이사 온 이듬해 능소화를 심었다.
해마다 5월의 장미가 소임을 다 하고나면 6월부터 찾아와 8월 말까지 근 두달을 피고지며 아침저녁으로 눈을 호강시켜주던 능소화다.  능소화가 활짝 필때면 꿀벌들이 엄청 찾아와 윙윙거리는 소리는 아침을 반겨주는 교향곡과도 같았다. 둘째아이 결혼하기전 예비사위를 초대할 때도 꽃길을 만들어주 던 능소화였다. 꽃이 떨어져도 잔디밭이나 맥문동, 회양목을 꽃으로 장식하곤 했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가 유달리 애착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앞집의 민원(?) 때문에 능소화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꽃가루 때문에 2층 창문을 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꽃이 떨어져 뒤뜰을 지져분하게 한단다. 내가 일년에 서너번씩은 깨끗하게 청소해주기도 하는데 말이다. 능소화는 꽃가루가 날리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연거푸 세번씩이나 만날때마다 요구한다. 첨엔 꽃가루를 핑게대더니 이젠 '능소화를 집안에 심는 거 아니다'한다. 하긴 원래 등나무라든지  하는 덩쿨식물은 집안에 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는 일마다 꼬이기 때문이란다. 
 
어제 일찍 퇴근하여  막걸리 한 잔 부어 터줏신께 고하고 능소화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달래며 능소화를  짤랐다. 앞마당이 텅비어 버려 허전했다.  아내에겐 몇일 전부터 예고는 하였지만 퇴근하고 돌아온 아내가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완전히 밑둥까지 자른 것이 아니고 중간을 잘랐으니 거기서 새로운 싹이 나오면 이웃집 담을 넘지 않도록 아담하고 예쁘게 다시 키워 보겠다고 달랬지만 아내의 눈가는 여전히 촉촉하다. 
 
살아가면서 어디 나만 좋아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옆집의 대형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던가?
걸핏하면 차고 앞에 주차하여 옴짝딸짝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웃 빌라 거주 젊은 청년에게도 얼마나 야단을 쳤던가? 
 
그렇다해도 아내에게 미안하고, 능소화에게 미안하지만, 이웃집 할머니는 얄밉다. 
 
202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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